전통부락의 마을 어귀나 고갯마루, 산기슭 등에 신앙의 대상이 되는 원추형 돌무더기가 있다.
마을 사람들은 이런 돌무더기를 큰 나무와 함께 보통 ‘서낭당’이라 부른다. 마을로 들어오는 액, 질병, 재해 등을 막아주고 한 해의 풍년과 만사형통을 기원하는 신성한 장소로 여긴다. 매년 음력 정월에는 길한 날짜를 택해 이곳을 중심으로 마을제사가 행해진다. 헝겊이나 천과 짚들이 걸려 있는 나무, 즉 서낭당의 신목(神木)에 해를 가하거나 쌓인 돌과 돌탑을 훼손하는 행위는 큰 벌을 받게 된다고 믿었다. 이것은 우리네 서민 사회에 전승된 기층문화이고 고대의 자연관이었다.
그중 한 마을에서 다른 마을로 넘어가는 산마루에 설치했던 서낭당은 풍수적 측면에서도 꽤 타당한 이유가 있다. 땅의 기운은 그 땅에 사는 생명체를 먹여 살리는 자양분과 같은 것이어서 지기(地氣)가 왕성해야 마을과 사람이 부귀와 번영을 누린다. 지기가 쇠약하면 발전이 미약하거나 불행이 닥치기도 한다. 그래서 마을의 지기는 손상되면 안된다.
산에 저장된 지기는 지맥을 따라 마을로 흘러간다. 산봉우리와 봉우리 사이의 지맥을 이어주는 가늘고 낮은 고개인 과협(過峽·고갯마루)은 지맥을 묶고 조인 곳이라 지기가 강하게 뿜어져 나온다. 모래시계에서 모래가 떨어지는 작은 구멍을 생각하면 이해가 쉽다. 웅장한 산에서 흘러온 지맥이 다음 산으로 솟구치려면 반드시 지기를 작게 모았다가 힘차게 내뿜는 장소가 필요한데 과협이 그 역할을 한 것이다.
과협에 대해 더 잘 이해하려면 악기를 불어보면 된다. 공기를 들이마신 뒤 입을 크게 벌리면 공기가 흩어져 좋은 소리가 나지 않는데, 입을 작게 오므려서 불면 기운이 한 곳으로 모여 아름다운 소리가 난다. 과협은 다른 장소보다 지기의 힘이 강하다. 만약 과협의 지맥이 손상되면 마을로 공급되는 지기 역시 훼손돼 해당 마을에서 큰 부자나 위대한 인물이 나길 기대하기 어렵다고 풍수에선 믿고 있다.
그래서 조상들은 마을의 안녕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는 과협의 지맥을 바람과 물, 인마(人馬)로부터 보호하기 위해 돌무더기를 쌓고 고개의 흙이 흩어지는 것을 방지한 것이다. 고갯마루는 좌·우측에서 바람이 세차게 불고 인마가 지나다녀 흙이 밤낮으로 쓸려나가기 쉽다. 지기는 흙에 따라 흐르고 흙에 머물기 때문에 흙이 침식되면 지기도 바람에 의해 마르게 돼 이를 돌을 쌓아 막은 것이다.
땅의 좋고 나쁨을 알려면 먼저 과협부터 살펴봐야 한다. 지맥이 훌륭하면 당연히 좋은 과협이 있고 과협이 아름다우면 명당도 있게 마련이다. 그 모양은 벌의 허리처럼 잘록하거나 학의 무릎처럼 동그랗고 볼록한 것이 좋다. 과협이 없으면 지맥의 기세가 아무리 웅장해도 살기(殺氣))를 제압하지 못해 혈을 맺지 못한다. 어느 고갯마루의 서낭당을 볼 때면 그것을 무병장수를 비는 신물(神物)로만 보지 말고, 마을과 주민들의 안녕을 지켜주는 풍수적 비보물(裨補物·액운 등을 막아주는 물건)로 봐야 더 정겹다.
고제희 < 대동지리풍수학회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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