툴바 메뉴 기업은 최고경영자의 역량, 사업전략의 적절성, 경기와 시장 상황 등에 따라 부침을 거듭한다. 삼성이나
현대차그룹처럼 한국 현대사와 함께 성장한 기업들이 있는가 하면 대우그룹처럼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진 기업들도 적지 않다. 과학적인 근거는 많지 않지만 이들 기업의 운명을 풍수와 연관시키는 경우도 더러 있다. 특히 기업의 '집'에 해당하는 사옥을 풍수적 관점에서 제대로 지어야 기업이 흥한다고 주장하는 풍수가들이 많다.
대표적인 사례가 SK텔레콤 사옥인 서울 을지로 'T타워'다. 동방대학원대에서 풍수를 강의하는 양만열씨는 31일 "서린동 SK사옥은 좋은데 T타워의 형태는 풍수상으로 좋지 않다"며 "사옥의 형태는 풍수에서 매우 중요한 요소로 꺾인 모양보다 반듯한 형태가 좋다"고 말했다. T타워는 지상 33층, 지하 6층짜리 건물로 2008년에 지어졌다. 형태적으로는 27층부터 건물 모양이 앞으로 꺾여 있다. 회사 측은 이동통신사답게 사옥을 휴대전화 형태로 만들었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건물이 늘 허리를 굽혀 인사하는 형태여서 풍수학적으로 좋지 않다는 것이다.
SK 서린동 본사거북이 떠받치고 있는 형태… 입구 청계천 향해 '배산임수'
반면 서린동 SK그룹 본사는 풍수학적 요소를 적잖게 고려한 건물로 알려져 있다. 작고한 최종현 전 SK그룹 회장이 지은 이 건물은 지상 36층, 지하 7층 규모로 1999년 완공됐다. 건물 밑 네 기둥에 거북 발 문양이 있고 청계천 쪽으로 향한 정문 앞에는 거북 머리를 상징하는 검은 돌이, 후문 쪽엔 꼬리를 뜻하는 삼각 문양이 있다. 즉 건물 전체를 거북이 떠받치고 있는 형태다. 거북이 받쳐야 길한 '영구음수형(靈龜飮水形)' 명당이란 풍수 쪽 조언을 받아들인 것이다. 종로 쪽이 아닌 청계천 쪽으로 입구를 낸 것도 배산임수의 틀을 갖춰 물의 기운을 받아들이려는 의도였다고 전해진다. 말하자면 서린동 사옥의 좋은 기운이 T타워에서 크게 감쇄된다는 것이다.
■ 그룹의 부침싸고 풍수지리 뒷담화 무성SK텔레콤 관계자는 "사옥 모양에 관한 (풍수학적) 얘기는 들어본 적도 없고 신뢰할 수도 없다"며 "고객에게 겸손하려는 의지를 건물 디자인에 담은 것으로 오히려 기업 이미지 제고에 긍정적인 역할을 한다고 본다"고 말했다.
금호아시아나그룹 사옥도 '재계 풍수지리 뒷담화'에 '단골 손님'으로 등장한다. 금호아시아나는 서울 신문로 사옥을 2008년 길 건너편인 현재의 위치로 옮겼다. 우연의 일치인지 이때부터 사세에 변화가 왔다. 이전까지만 해도 금호아시아나는 아시아나항공의 급성장 등을 발판으로 삼아 10대그룹으로 성장했다. 하지만 비슷한 시기에
대우건설과
대한통운 등 매물로 나온 기업을 인수하면서 그룹에 위기가 닥쳤다. 인수·합병에 동원된 자금 문제가 불거지며 유동성 위기설이 나오더니 2009년 12월에는 그룹 차원의 대책을 발표하기도 했다. 이후 인수한 대우건설과 대한통운을 다시 매각하는 위기를 겪기도 했다. 이 과정에서 박삼구 회장과 동생인 박찬구 금호석화 회장의 갈등이 불거지며 계열 분리가 이뤄졌다.
금호아시아나 사옥'배산임수형'구사옥 버리고 현관 북쪽으로 만든 뒤 부침
풍수가들은 금호아시아나그룹의 부침에도 풍수적인 요인이 작용했다고 주장한다. 구사옥이 남쪽을 향해 있었던 반면 현재의 사옥은 북쪽으로 현관을 만들어 길하지 못한 기운이 작용하고 있다는 해석이다. 금호 앞쪽의 신문로가 과거 개천이어서 구사옥이 북쪽 산을 등지고 남쪽에 물을 앞둔 '배산임수형' 명당이었는데, 이를 버려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것이다.
삼성처럼 사세가 확장되고 있는 기업의 터는 풍수적으로도 위치가 뛰어나다는 해석이 많다. 2008년 삼성은 서초동으로 서울 본사를 옮겼다. 이곳은 관악산과 우면산 지맥이 닿아있고 여러 계곡의 물이 고였다가 천천히 나가는 '취면수(聚面水)' 형상으로 알려져 있다. 풍수가들은 이런 지형에 돈이 모인다고 설명했다. 한 풍수가는 "삼성 사옥은 지금 터도 좋지만 예전 태평로 사옥의 터도 상당히 좋다"고 말했다.
양재동 현대차그룹 사옥은
구룡산과 청계산, 대모산의 물이 모이는 지점이어서 삼성 서초동 사옥 못지 않게 좋은 터로 꼽힌다. 여의도 LG트윈타워는 물에 떠 있는 듯 고귀하다는 '연화부수형(蓮花浮水形)' 자리로 통한다. 현대차는 양재동으로 옮긴 뒤 글로벌 자동차 기업으로 성장했고, LG그룹도 4대 그룹 자리를 굳건히 지키고 있다.
삼성 서초동 사옥관악산과 우면산 지맥 닿아 돈이 모이는 '취면수' 형상
■ 기업본사 땅값 비싼 곳에 많은데, 이런 곳이 곧 '명당'돈을 다루는 금융권도 풍수지리에 민감한 편이다. 현재 한국은행이 별관으로 사용 중인 옛 상업은행 본점은 남산3호터널의 바람길에 있어 여기에서 뿜어져나오는 나쁜 기운을 맞는다는 얘기가 돌았다. 1994년 당시 정지태 행장이 집무실 집기를 터널 반대편으로 돌리고, 바람을 뺀다는 의미에서 막아뒀던 남문을 1995년 개방한 일화는 유명하다. 이후 상업은행 남문 쪽에 있던 한국은행이 그 바람기운을 맞아 그해 9월 지폐 유출사건과 이듬해 구미사무소 현금 사기사건 등에 휘말렸다는 소문이 나돌았다.
풍수지리는 과학적으로 검증되지 않아 딱히 어떤 자리가 명당이라는 근거는 없다. 그러나 기업 스스로 사옥 건립 과정에서 풍수적 내용을 중시하는 문화를 버리지 못하는 것도 사실이다. 한 재계 관계자는 "출근해서 쏟아지는 아침 햇살 속에서 일을 하면 온 몸이 개운하고 의욕이 넘치게 되는 경우가 많다"면서 "건물 외관이나 방향 등 전통적인 풍수를 완전히 무시하지 못하는 게 맞는 것 같다"고 말했다. 최창조 전
서울대 지리학과 교수는 풍수에 심취해 1993년 국립대 교수 자리까지 박차고 나와 풍수지리 공부에 매달린 인물이다. 최 전 교수는 다소 다른 분석을 내놓았다. 그는 "등산을 해도 어떤 사람은 산 정상이 시원하다고 하고, 어떤 사람은 산 중턱이 아늑하게 느껴진다고 한다"면서 "땅과 기운을 주고받는 건 사람마다 다르다"고 말했다.
LG 트윈타워
현대자동차·기아자동차 사옥
실제 대부분의 기업들은 전반적으로 풍수지리학적으로 좋은 곳에 지어졌다. 대체로 땅값이 비싼 곳에 기업 본사가 많은데, 이런 곳이 곧 명당자리라는 것이다. 땅값에 '명당 값'이 이미 녹아 있다는 것이다.
최 전 교수는 "풍수를 생활 속 지혜나 참고사항이 아닌 교조적 이념으로 받아들일 필요가 없다"며 "기업의 사업이 연극이라면, 풍수는 무대 정도에 그치는데, 무대가 연극 전체를 결정하는 요소는 아니지 않느냐"고 덧붙였다. 그는 또 "풍수에 매달리면 일하는 임직원들이 책임을 지지 않고 건물이나 땅 탓을 하는 부작용이 발생한다"면서 "결국 '오너나 임직원들의 노력'이 기업의 운명을 결정하는 가장 중요한 요소"라고 말했다.
< 홍재원 기자 jwhong@kyunghyang.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