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혼을 적시는 그리움

[스크랩] 나 늙으면 당신과 살아보고 싶어 / 황정순

우리옹달샘 2010. 3. 26. 02: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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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 늙으면 당신과 살아보고 싶어 

                        황 정 순 



나 늙으면 당신과 살아보고 싶어 가능하다면 꽃밭이 있고 가까운 거리에 숲이 있으면 좋겠어 개울 물소리 졸졸거리면 더 좋을꺼야 잠 없는 나 당신 간지렵혀 깨워 아직 안개 걷히지 않은 아침 길 풀섶에 달린 이슬 담을 병 들고 산책해야지 삐걱거리는 허리를 주욱 펴 보이며 내가 당신 "하나 두울"체조시킬거야 햇살이 조금 퍼지기 시작하겠지 우리의 가는 머리카락이 은빛으로 반짝일때 나는 당신의 이마에 오래 입맞춤 하고 싶어 사람들이 봐도 하나도 부끄럽지 않아 아주 부드러운 죽으로 우리의 아침 식사를 준비 할꺼야 이를테면 쇠고기 꼭꼭 다져넣고 파릇한 야채 띄워 야채죽으로 하지 깔깔한 입 안이 솜사탕 문듯 할꺼야 이때 나직히 모짜르트를 올려 놓아야지 아주 연한 헤이즐럿을 내리고 꽃무늬 박힌 찻잔 두개에 가득 담아 이제 잉크 냄새 나는 신문을 볼 꺼야 코에 걸린 안경 너머 당신의 눈빛을 읽겠지 눈을 감고 다가가야지 서툴지 않게 당신 코와 맞닿을수 있어 강아지 처럼 부벼 볼꺼야 그래 보고 싶어거든 해가 높이 오르고 창 깊숙히 들던 햇빛 물러설즈음 당신의 무릅을 베고 오래오래 낮잠도 자야지 아이처럼 자장가도 부탁해 볼까 어쩌면 그때는 창 밖의 많은 것들 세상에 분주한 것들 우리를 닮아 아주 조용하고 아주 평화로울거야 봄엔 당신 연베이지색 점퍼 입고 나 목에 겨자빛 실크 스카프 메고 이른 아침 조조영화를 보러갈까 드라이빙 미스 데이지 같은(메디슨 카운티의 다리) 여름엔 앞산 개울가에 당신 발 담그고 난 우리 어릴적 소년처럼 물고기 잡고 물 장난해보고 그런 날 보며 당신을 흐릿한 미소로 우리 둘 깊어가는 사랑 확인하려 할꺼야 가을엔 희끗한 머리 곱게 빗고 헤이즐럿 보온병에 담아들고 낙엽 밟으러 가야지 저 벤치에 앉아 사진 한번 찍을까 곱게 판넬하여 창가에 걸어두어야지 겨울엔 당신의 마른 가슴 덮힐 스웨터를 뜰거야 백화점에 가서 잿빛 모자 두개 사서 하나씩 쓰고 강변 찻집으로 나가 볼꺼야 눈이 내릴까 그리고 그리고 서점엘 가는 거야 책을 한아름 사서 들고 서재로 가는거야 지난날 우리 둘 회상도 할겸 나 늙으면 당신과 살아보고 싶어 당신의 굽은등에 기대 울고 싶어 장작불 같은 가슴 불씨 사그러들게 하느라 참 힘들었노라 이별이 무서워 사랑한다 말하지 못했노라 사랑하기 너무 벅찬 그때 나 왜 그렇게 어리석었을까 말할꺼야 나 늙으면 당신과 같이 살아보고 싶어

 

 

 

 

  * 해인풍수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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