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뉴시스】하도겸 박사의 ‘히말라야 이야기’ <33>
세계 불교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사람이라면 대부분 달라이라마를 꼽는다. 이는 어쩌면 티베트에 대해 지나치게 동정적인 입장이거나 남성 중심적인 사고에 물 들은 것인지도 모른다. 그에 버금가는 수행한 사람도 적지 않기 때문이다. 달라이라마도 그의 이야기를 들은 뒤 얼굴을 양손에 파묻은 채 흐느끼며 “톈진 빠모, 당신은 정말 용감한 사람이군요”라고 말했을 정도로 파란만장한 삶을 살았던 훌륭한 수행자 가운데 한 사람인 텐진 빠모 스님이 11월에 내한한다. 2005년 달라이라마에 의해 ‘6인의 서양 비구니위원회’ 위원으로 위촉돼 비구니 승단이 없는 나라에서 비구니 전통을 되살리는 역할을 맡고 있다.
부처님의 고행으로 알려진 히말라야 설산에서 12년간 혼자서 수행한 이력과 맑고 순수하고 선량한 얼굴을 가진 그는 세계를 순회하며 흡인력 있는 강연으로 인기가 많다. 이번 방한은, 최근 창립된 세계불교 여성협회 한국지부인 샤카디타 코리아의 초청으로 이뤄졌다. 불교 여성개발원, 이화여자대 한국여성연구원, 서울대 여성연구소 등에서 후원한다. 11월 6일 내한해 10일 오후 2시 조계사 내 전통문화예술 공연장에서 대법회를 한다. 또 11일과 12일에는 내소사와 선운사 지역에서 걷기 명상을 할 예정이다.
1943년 영국 출신인 그녀의 본명은 다이앤 페리다. 20세에 인도로 건너가 캄트롤 린포체에게 배우고 12년간 영하 35도의 극한 환경 속에서 3×2m 해발 1만2000피트 높이의 작은 동굴에서 하루 3시간 수면을 취하는 장좌불와로 용맹정진했다. 24년간의 수행을 끝내고 세상에 나온 후 영국의 한 저널리스트와 인터뷰에서 텐진 빠모 스님은 여성의 몸으로 깨달음을 얻을 수 있다고 믿는다고 선언했는데 이 인터뷰의 결과가 ‘나는 여자의 몸으로 붓다가 되리라’라는 책이다. 그는 이 세상의 누구든 자신에게 놓인 제약과 선입견에서 벗어날 때 자신의 능력을 온전하게 발휘할 수 있으며 그것은 여성 수행자에게도 같다고 천명하고 있다.
영원한 시간의 수레바퀴 속에서 이승은 아주 짧은 순간에 지나지 않는다. 내세에서는 어떻게 될 것인가? 우리는 무엇을 향해 가고 있는가? 이때 윤회로부터 영원히 빠져나오고 그 윤회를 벗어나 니르바나의 경지에 들기 위해 어떻게 해야 하는지 그리고 그것이 나 자신을 위한 이기적인지 아니면 다른 사람을 위한 이타적인지도 생각해야 한다. 그의 책 내용을 보면 이미 상당한 깨달음을 얻은 것이 분명한데 겸손하게 말하는 것이 말뿐이 아닌 언행일치의 단계에 접어들고 있음을 알게 해준다. 이번 법회의 주제는 ‘어떻게 살고, 죽을 것인가?’다. 생사일여(生死一如)에 대해서 이번에는 어떠한 깨달음을 전달해 줄 것인지 무척 기대된다.
그의 말은 명쾌하게도 성(性)과 승속(僧俗)을 벗어난 자리로부터 펼쳐진다. 사실 수행에 있어 여성의 몸이냐 남성의 몸이냐는 전혀 중요하지 않다. 내면을 중요시하고 스스로 본래면목을 찾는 불교에서 외형적인 성 즉 껍데기에 집착하는 것 자체가 잘못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남성이냐 여성이냐 재가자냐 출가자냐 아니냐는 망상일 뿐이다. 오직 영원한 깨달음을 얻기 위해서 지금 자기가 선 곳에서 당장 무엇을 왜 해야 하는지를 찾아야 한다.
요즘 산에 들어가 선방에서 또는 토굴에서 신도들에게 대중공양을 받으면서 용맹정진의 수행을 했는데도 깨달은 이가 전혀 나오지 않고 있다. 오히려 복잡 미묘한 세상에서 온통 고통 속에서 생활하는 사부대중 가운데서 선지식들이 나타나고 있다. 그의 말대로 수행은 머리를 깎고 산문에 들어서야만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자신이 맺고 있는 인연에 따라 순간순간을 최선을 다해 열심히 살아간다면 누구나 깨달음의 길로 들어설 수 있다. 오히려 출가에서 산속에서 신도들이 가져다주는 밥을 먹으면서도 산란한 마음이나 반쯤 깨어 있는 상태로 행한다면 그저 세속적인 행동에 지나지 않는 것이다.
아무리 인가를 받았다고 종일 뻐꾸기처럼 떠들어대도 그건 허망한 것에 지나지 않다. 진정 깨달았다면 인가는 필요하지 않다. 인가받았다고 떠든다는 것 자체가 도가도비상도(道可道非常道) 즉 인가를 받은 것이 아니라 만들어 낸 것이라는 수행의 기본도 망각한 이들의 울림 없는 메아리일 뿐이라는 한 선지식의 말에 귀 기울여야 할 것이다. 신도들은 인가를 받았다느니 종정이니 방장이니 조실이니 하는 허명에 더는 속아서는 안 된다. 옛 조사록을 보면 뜰 안의 나뭇잎을 쓸다가도 화두만 제대로 잡고 선정에 들어 있다면 모든 행위가 영적 수행이 될 수 있다. 생활선의 시대가 열린 것이다. 큰스님의 대보살이 되거나 절의 신도회장이 돼 불사하는 것이 잠시 앉아서 화두에 드는 것만 못하다. 이미 절은 매우 많고 불사를 안 해도 부처님의 가르침은 무너지지 않는다. 법등명자등명이다. 부처님 법의 등은 이미 밝으니 이제 우리들의 등에 불을 밝힐 차례다.
불교계에서 스님은 사미나 사미니가 아닌 비구나 비구계를 받은 정식 스님을 높임말이다. 외국 여승은 비구니계를 받은 이가 적으니 엄밀하게 말하면 스님이 아니다. 이 훌륭한 수행자인 텐진 빠모 역시 1973년에 홍콩에서 비구니계를 받기 전까지는 정식 승려가 아니었다. 그러나 누가 감히 그를 불법승 삼보 가운데 승이 아니라고 할 수 있단 말인가! 결국, 삼보 가운데 승은 스님이 아니라 부처님의 제자이기를 원하고 행하는 사부대중 전체라고 봐야 한다. 그것을 부정하는 이들은 이미 망상에 사로잡혀 갇혀있는 불쌍한 중생이다. 안타깝기 그지없으며 우리 곁에서 재가불자들의 소임을 천명한 무진장 스님의 빠른 원적이 아쉽기만 하다.
이전에 그는 한국 비구니 승단은 교육 시스템, 수행법 등이 잘 갖춰져 있어서 세계여성들이 사회적으로 어떤 일을 할 수 있는가에 대한 하나의 모델이 될 수 있다고 감탄했다. 하지만 최근 대한불교조계종 종회에서 일어난 비구니와 관련된 일련의 사건들에 대해 그가 무슨 말을 할지 불교 신자로서 참으로 부끄럽다. 수백 년 동안 금녀(禁女) 구역인 티베트의 수도원에 발을 들여놓은 첫 서구여성으로 겪어야 했던 극심한 차별을 경험한 그는 불가의 계율이 현대적으로 바뀌어야 한다고 강조해 왔다. “부처님도 열반에 들기 직전 소소한 계율은 버려야 하며, 가장 중요한 계율만이 전해져야 한다”고 했다. ‘비구니에게 어떤 장점도 없으나, 남성에게는 여성이 갖지 못한 것 하나 즉 교만함이 있다’며 부처님의 가르침에 충실 하고자 구업을 범하면서까지 일침을 가하는 그의 말이 가슴에 잔잔하다. 다만, 티베트 불교가 우리보다 더 여성 차별적이라는 것도 잊어서는 안 된다.
*이 글의 취지와 내용은 국립민속박물관과 무관합니다.
*텐진 팔모라는 이름보다는 텐진파모, 텐진팔모로 소개된 바 많으나 주최 측의 요구에 따라 정정하며 내한 후 단독 인터뷰를 통해 그의 수행에 대한 자세한 얘기를 전할 예정이다
국립민속박물관 학예연구사 galmun@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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