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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과 나무와 풀, 곤충과 벌레를 찾아나 다니는 것을 생태탐사라고 생각하였는데,
'나물'을 주제로 하는 생태도감이 나왔습니다.
동화작가이자 들꽃 생태 안내자로 활동하는 이영득 선생님이 이번에는 산, 들, 그리고 갯가에서 나는
나물과 친해지는 길잡이를 자처하고 나섰습니다.
앞서 이영득 선생님은 동화책 < 할머니 집에서 > 그리고 풀꽃 책으로 < 풀꽃 친구야 안녕? > ,
< 주머니 속 풀꽃 도감 > , < 내가 좋아하는 풀꽃 > 을 펴냈습니다.
이번엔 웬 뜬금없는 '나물 이야기'를 책으로 냈나 싶었는데,
가만히 읽어보니 나물 이야기와 풀꽃 이야기가 아주 다른 이야기가 아니더군요.
풀꽃이 나물이고, 나물이 풀꽃이었습니다.
< 주머니 속 나물도감 > 에는 본격적인 산나물 소개에 앞서서 먼저
'산나물 할머니 이야기'라고 하는 짤막한 이야기가 나옵니다.
나물도감을 쓰게 된 작가의 마음이 잘 드러난 글입니다.
처음 나물도감을 써 달라는 부탁을 받았을 때는 많이 망설였다고 합니다.
나물도감을 보고 몸에 좋다는 나물을 마구잡이로 싹쓸이하는 사람들이 늘어날까 봐 걱정이 되었다고 합니다.
생각하고 또 생각한 끝에, 어차피 누군가는 나물도감을 쓸 텐데, 차라리 사람들에게 어떤 마음을 가지고
나물을 캐야 하는지를 알려줄 수 있는 책을 쓰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을 하였답니다.
사람들이 < 나물도감 > 을 읽기 전에, 나물도감을 들고 나물을 캐러 나가기 전에
먼저 '산나물 할머니' 이야기를 듣고 갈 수 있도록 해야겠다고 마음먹은 것이지요.
그래서 이 책 맨 앞에는 '산나물 할머니 이야기'가 먼저 나옵니다.
이영득 선생님은 몇 해 전에 봄에 깊은 산골짜기에서 봄꽃하고 눈을 맞추다가 산나물 할머니를 만났다고 합니다.
할머니가 마치 토끼가 뛰어다니듯이 이쪽 비탈과 저쪽 비탈을 오가면서 날랜 모습으로
나물을 뜯고 있는 모습을 맨 처음 보았다는군요. 산도 잘 타고, 걸음도 빠른 토끼 같은 할머니였답니다.
일흔셋이나 된 할머니가 산에서 나물을 캘 때면 토끼같이 날렵한 걸음과 몸짓으로 자리를 옮겨 다니더라고 합니다.
처음 만나 방울토마토를 나누며 인사를 나눈 인연을 이어 그 후로도,
해마나 봄에 한두 번씩은 산나물 할머니를 뵈었다고 합니다.
할머니를 따라다니며 함께 나물을 캐는데, 풀꽃지기는 나물을 만나면 들여다보고, 사진 찍고, 이야기 나누고 하다
자주 산나물 할머니 뒤를 놓치기 일쑤였다고 합니다.
정말 신기한 일은 다시 할머니 뒤를 쫓아가면서 봐도 나물한 표가 나지 않더라는 겁니다.
"할머니, 나물을 그렇게 많이 뜯었는데, 흔적이 보이지 않아요. 발자국도 잘 안 보이고요."
"그렇더나? 이 나무에서 쪼매, 저 풀에서 쪼매 뜯었더니 표가 안 나더나? 고맙구로.
내가 산에 오면 몸이 좀 가볍다." 풀꽃지기와 산나물 할머니가 주고받은 대화입니다.
풀꽃지기는 산나물 할머니에게 나물을 제대로 하는 법을 배운 것이지요?
"아, 나물은 저렇게 하는 거구나! 산나물이나 약초를 한답시고 싹쓸이를 하거나
멧돼지가 산을 발칵 뒤집어 놓은 것처럼 하는 사람들이 봐야 하는데...
나물을 뜯어 팔면서도 자연에 대한 예의를 갖출 줄 아는 할머니.
아는 만큼 보이고, 아는 만큼 사랑하는 게 세상 이치라더니, 나물 하는 것도 예외는 아니었어요."
자연에 대한 예의를 넘어 산나물 할머니는 자연과 더불어 살아가는 법을 체득하고 계신 분이었던 것이지요.
산나물 할머니께 나물하는 법을 배운 풀꽃지기는 봄이면 겨우 한 접시 나올 정도로 나물을 뜯지만,
보양처럼 귀하게 먹을 수 있는 것은 자연에 대한 예의를 갖추고 얻은 음식이라는
자부심이 있기 때문이라고 하는군요.
< 주머니 속 나물도감 > 을 쓴 이영득 선생님은 나물 이름과 종류를 알기 전에
나물 뜯는 법을 먼저 알려주기 위하여 이 '산나물 할머니 이야기'를 먼저 독자들에게 소개하고 있습니다.
이래저래 풀꽃지기 이영득 선생님은 천상 나물꾼이 되기는 틀린 것입니다.
나물을 잔뜩 캐서 배불리 먹는 일에는 별로 관심이 없어 보이기 때문입니다.
"야들야들한 나물이 보이면 대견해 눈 맞추고, 예뻐서 들여다보고, 사진 찍고, 냄새 맡다 보면
나물은 한 움큼도 안 돼요. 그래도 그 좋은 철에 산에 있는 게 행복하고 좋아서 산한테도 감사하고,
걸을 수 있는 다리한테도 감사하고, 식구도 고맙고, 함께 간 동무도 고마워요."(본문 중에서)
나물 뜯는 것보다 눈 맞추고, 들여다보고, 사진 찍고, 냄새 맡고 하는데, 더 관심이 있었기 때문에
< 주머니 속 나물도감 > 이라는 멋진 책이 독자들을 만날 수 있었겠지요.
이 책에는 나물 한 가지를 소개하는 데, 적게는 석 장, 많게는 예닐곱 장씩이나 되는 사진이 들어있습니다.
초봄에 찍은 사진, 나물하기 좋은 때 찍은 사진, 나물을 뜯어 놓은 사진, 꽃 핀 모습을 찍은 사진,
줄기 올라오는 모습을 찍은 사진, 나물을 뜯어 무쳐놓은 사진이 들어있는 것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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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 계절 동안 산으로 들로 다니며 나물들과 눈 맞추고, 들여다보고, 사진 찍고, 냄새 맡는
오랜 세월을 보낸 흔적이 < 주머니 속 나물도감 > 으로 엮여져 나온 것입니다.
이 책에는 나물 종류를 크게 다섯 가지로 나누어 분류하였는데 산에서 나는 산나물 127종, 들에서 나는 들나물 75종,
나무어서 나는 나무나물 33종, 바닷가에서 나는 갯가 나물 9종, 그리고 독이 있는 식물 58종을 담고 있습니다.
풀꽃지기가 전하는 나물 제대로 하는 법 |
- 자연의 기운을 느끼며, 고맙고 감사한 마음으로 한다. 먹는 나물은 가능하면 잎만 뜯는다. 뿌리를 캐야 한다면 큰 것만 캐고 어린 것은 그대로 둔다.) - 여러 포기에서 조금씩 뜯는다. = 덩굴(다래, 으름) - 덩굴 밑동을 자르지 않는다. |
앞서 낸 책 풀꽃도감과 겹치는 부분도 적지 않습니다만,
눈으로 보고 마음에 담는 풀꽃들을 입으로 먹어 우리 몸이 되는 식물이라는 관점에서 새로 보니
'나물'이라는 이름이 붙었습니다.
쇠뜨기를 예를 들어보면, < 풀꽃도감 > 과 < 나물도감 > 에서 이렇게 다르게 설명해놓았습니다.
쇠뜨기 - 소가 잘 뜯어 먹는 풀이라고 쇠뜨기다.
솔잎같이 생긴 긴 영양줄기와 뭉툭한 붓같이 생긴 생식줄기(뱀밥)가 따로 올라온다.
영양줄기는 마디마디 잘 끊어진다. 뿌리가 깊어서 밭에 나면 다 뽑아내기 어렵다.(주머니 속 풀꽃도감 중에서)
쇠뜨기 - 소가 잘 뜯어 먹어 쇠뜨기다. 생식줄기(뱀밥)가 붓같이 생겨서 필두채라고도 한다.
땅속줄기가 길게 뻗으며 자라 무리를 이룬다. 이른 봄에 올라오는 생식줄기를 데쳐서 볶아 먹는다.
조림이나 튀김을 하고 밥 지을 때 넣기도 한다.
영양분이 풍부해 많이 먹으면 설사할 수도 있다.(주머니 속 나물도감 중에서)
풀꽃도감과 나물도감을 차근차근 비교해보니 산, 들에 자라는 많은 풀꽃들이 사람의 손을 거쳐
먹을 수 있는 나물이 되더군요.
산에 지천으로 피어있던 풀꽃들이 어렵고 힘든 시절, 가난한 사람들을 연명하게 해주었던
바로 그 나물이었던 것입니다.
풀꽃의 질긴 생명력을 뜯어먹은 가난한 민초들의 생명도 모질게 질겼던 것은 아니었을까요?
그 밖에도 < 주머니 속 나물도감 > 에는 산나물 캐러 가는 옷차림과 준비물, 산나물과 독이 있는 식물 구별하는 법,
산나물 먹는 법과 보관하는 법, 묵나물 조리법, 산야초 효소 만드는 법 같은
나물과 관련된 유익한 내용이 실려 있습니다.
나물의 생김새와 이름을 익혀, 산으로 들로 나물 캐러 나가기 전에, 나물 제대로 캐는 법, 그
리고 나물 캐는 이의 마음가짐을 먼저 갖추어야 한다는 충고가 마음에 와 닿습니다.
나물 캐기보다 자연과 더불어 살아가는 법을 먼저 마음에 새기시기 바랍니다.
개발나물, 놋젓가락나물, 대나물, 동의나물, 삿갓나물, 요강나물, 윤판나물, 피나물...
이 가운데 독이 강한 동의나물, 삿갓나물, 요강나물 같은 건 먹으면
구토와 발진, 설사, 복통, 현기증, 경련, 호흡곤란 같은 증상이 나타난다.
심하면 생명을 잃을 수도 있으니 주의한다. 오마이뉴스 이윤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