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혼을 적시는 그리움

[스크랩] 귀래에서 달을 보다 / 김선우

우리옹달샘 2010. 1. 12. 23: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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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귀래에서 달을 보다

      /  김 선 우

 

 

    훌쩍 길 떠났다가 돌아오는 길이었습니다.

    오늘따라 이 별은 퍽도 빨리 도는 듯.

   석양이 내리더니 금새 어둑신해진 국도변의 산능선들이

   낮 동안에 곧추세웠던 등뼈를 편안히 눕게하고

   서로의 머리에 무릎벼게를 베어주면서

   무어라 타령조로 읊기도 하고 속삭이며 간지럼을 태우기도 합니다.

 

    이토록 이윽한 몽상과 휴식과 사랑의 시간.

   나는 잠깐 발길을 멈추고

   저 능선들이 품고 있을 다람쥐며 오소리며

   산새들과 작은 벌레들의 꼼지락거리는 소리에 귀기울이다가

   문득 한 목소리를 들은 듯합니다.

   목소리이되,

   그것은 몸 밖으로 소리를 파열시켜 내어보이는 소리가 아니라

   자기의 몸 속을 물결치며

   우웅우웅 복화술로 말하듯 스며나오는 달의 목소리였습니다.

 

     어느새 달이 능선을 어루만지며 떠올라 있었고

   그것은 둥근,꽉차서 평화롭게 비어 있는 보름달의 목소리였습니다.

   우웅 우웅 오옴 오옴 후움 후움 허엄 어어엄.

   그 목소리는 산능선 바로 가까이에서

   산이 품고 기르는 것들의 착하고 연약한 뒤척임들을 들여다보며

   그래...... 그래.......라고 글썽여주고 있었지요.

   오옴 오옴 옴마니반메훔......

 

     옴마니반메훔.

   이 진언은 어느결부터인가

   아름답거나 슬픈 풍경이 나를 흔들어올 때

   나도 모르게 마음속으로부터 속삭이게 되는 만트라이기도 합니다.

   나는 특정한 종교의 특정한 종교적 제의를 사모하는 사람이 아니니,

   내게 있어 옴마니반메훔은

   이 별과 우주에 차고 넘치는

   모든 유랑하는 신들을 향해,

   어떤풍경 속에 떠도는

   나를 향해 드리는

   감사와 간구의 진언인 셈이지요.

 

    무연히 이 진언이 시시로 떠올라오곤 하였을 때,

   나는 한 스님에게 그 의미를 물은 적이 있습니다.

   어디선가 내가 얻어 읽었던 정보들을 취합하여

   육자진언(六字眞言)이 어쩌니,

   진공묘지(眞空妙智)의 '마니'와

   광명원각(光明圓覺)의 '반메'가 어쩌니,

   우리말로 하자면 '광명의 지혜' 어쩌고 하면서,

   제대로 알고있는 것인지를 여쭌 적이 있었지요.

   그때 나는 조용한 일갈을들어야 했습니다.

      "다만 성심으로 진언을 떠올리고

      다만 성심으로 진언을 염하십시오."

 

    이는 분별심을 동원하여 해석하려 들지 말라는 의미일 것이며

   진리에 가까이 있는 일에 분별심만큼 해로운 것이 없다는 일갈이기도 했습니다.

   그분은 한 말씀을 곁들여주셨지요.

   마음 저깊은 곳으로부터 상서로운 연꽃 한송이를 떠올려보십시오.

   깊은 물속으로부터 자라나와 꽃대궁을 밀어올리고

   마침내 환하디 환한 꽃잎을 벌려 보이는 한송이 만다라화를.

   그 꽃이 자기를 열 때,

   한송이 연꽃인 당신이 피어나고

   세계가 피어나고 우주가 환희롭게 피어나는 것을 상상해보십시오. 라고.

 

    옴마니반메훔.

   산능선을 어루만지는 그 숨결

   그대로 내 목덜미에 와닿는 달의 숨결.

   달은, 성심을 다해 자기의 숨을 여닫고 있었습니다.

   그 자체로 우주의 호흡이며,

   아름다운 것을 다만 아름답게 하고

   애달픈 것들을 위무하여

   평안에 이르고자 성심을 다하는

   달의 숨, 달의 목소리.

 

    그 숨결은 느릿느릿 대지를 어루만지고 있었고

   나는 먼 능선들이 치마폭을 너울거리며

   달춤을 추는 것을 오래도록 바라보았습니다.

   천공의 둥근 만다라와

   첩첩의 산능선이 빙빙 원무를추며 그리는 대지의 만다라.

   옛적부터 우리네 여인들이

   밝은 달을 모시어 강강수월래, 달춤을 추었듯이,

   첩첩이 큰원과 작은원과 타원을 그리며 돌다가 흩어지고 다시 모이는

   대지의 원무를 이윽히 바라봅니다.

 

    내가 발길을 멈춘 이곳은 강원도 귀래면.

   귀래라는 이름이 어찌하여 생겼는지는 알 수 없으나,

   달과 대지의 합환무(合歡舞).

   저 아득한 천지의 원무 속으로

   나의 몽상이 벗은 발로 가볍게 떠오르기 시작합니다.

   나는 중얼거립니다.

    귀래(歸來),

    미래로돌아가다,

    혹은 미래로부터 돌아오다, 라고.

 

 

 

                    * 김선우 <물밑에 달이 열릴 때> 중에서

                                   ~ 해인풍수 인용

 

 

 

 

 

출처 : 해인풍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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