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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 없는 도심 속 자투리땅의 깜짝 변신

우리옹달샘 2013. 7. 18. 19: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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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 없는 도심 속 자투리땅의 깜짝 변신

한겨레 | 입력 2013.07.18 10:20

[한겨레][esc] 살고 싶은 집




강남구 신사동 주택가 작고 경사진 땅을 활용한 고기웅 건축가의 작업실 겸 집 '신사 5611'


가장 큰 제약을 잘 활용했다고 할까요
경사 있는 비정형의 땅이라
조금은 저렴하게 산 것 같아요
사실 풀기가 매우 어려웠습니다
편안하게 드나들어야 하고
채광도 좋아야 했으니까요


서울 강남구 신사동 가로수길 뒤편 언덕길을 걷다 보면 고만고만한 연립주택들 사이로 왠지 눈에 띄는 흰 건물이 있다. 으리번쩍하지도, 웅장하지도 않은데 묘하게 독특하다 싶은 5층짜리 건축물이다. 부채꼴에다 경사도 있는 땅인데, 이를 딛고 선 건물은 곡선과 직선으로 조화를 이룬다. 건물 한쪽 귀퉁이는 둥글게 처리했지만, 꼭대기는 사선 모양으로 솟아 땅의 기울기를 닮았다. 지하로 들어가는 입구 쪽 지붕 모양의 캐노피도 건물의 '부록'인 양 건물 모양과 균형을 이루고 있다. 패션과 문화의 거리인 가로수길에서 '한 안목 한다' 하는 사람들의 시선을 사로잡는 이유가 있는 것이다.

이 건물은 2007년 변기 모양의 집인 '해우재'를 지어 나라 안팎에 이름을 알린 건축가 고기웅(39) 소장의 '신사 5611'이다. 지하공간엔 사무실이 있고 2~4층엔 임대용 원룸을 넣은 이른바 근린생활시설이자 도시형 생활주택. 5층 꼭대기엔 고 소장과 부인 이지은(30·커피아르코 대표)씨가 사는 작업 스튜디오 겸 집이 있다.

"100평 안팎의 '집 장사'들이 지은 다세대주택 사이에서 수많은 스펙트럼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고, 1·2인 가구의 도시인들이 가장 필요로 하는 주거환경을 콤팩트하면서도 쓸모있게 만들어 보여주고 싶었어요."

2011년 5월 짓기 시작해 작년 말 완공했으니 얼마 안 된 새 건물이다. 짧은 기간 유명해진 건 제약 많은 땅을 장점으로 만들었기 때문이다. 대지면적 144.80㎡(44평), 각 층 건축면적은 72.25㎡(22평) 정도밖에 나오지 않아 악조건이었다. 부채꼴 땅은 '돈이 나간다'는 속설뿐 아니라 실제 대지 활용도가 떨어져 가격이 낮게 책정되는 경향이 있다. 그뿐만 아니라 경사 때문에 높낮이가 많이 달랐다.

"가장 큰 제약을 가장 잘 활용했다고 할까요. 경사 있는 비정형의 땅이라 조금은 저렴하게 산 것 같아요. 땅은 어렵지만 내가 잘 풀면 되지, 그 생각을 했는데 사실 매우 어려웠습니다. 사람도 차도 편안하게 드나들어야 하고 사무실이나 집들도 채광이 좋아야 했으니까요."

건물 입구 1층 로비 맞은편 계단 공간엔 충분한 크기의 창을 뚫었다. 햇볕을 온전히 받게 돼 있어 밝을 뿐만 아니라 주변 경관까지 아름다워 답답하지 않다. 5층 고 소장의 집은 스튜디오 형식이라 현관을 열고 계단을 밟아 꺾으면 바로 개방형 거실이 이어진다. 20평대 원룸이자 거실이 이 집의 전부다. 천장이 3미터에 이를 정도로 높아, 좁다는 느낌은 들지 않으면서 너무 크지도 않아 오히려 아늑하다.

가장 눈에 띄는 건 커다란 창문. 입구 맞은편 창을 따라 사선으로 낸 계단식 정원에는 키 낮은 빨간 꽃과 풀들이 손님을 반긴다. 북쪽으로 가장 큰 창을 냈기 때문에 여름인데도 그렇게 덥지는 않다. 남쪽에도 창이 있어 "양쪽 문을 열어놓으면 종이가 날아다닐 정도로 맞바람이 잘 통한다"고 한다. 이 집은 늦은 오후까지 밝다. 옆쪽이나 뒤쪽까지 빼곡하게 비슷한 높이의 다세대주택이 들어서 있는 서울 도심 한가운데에 이렇게 환한 집 짓기란 창만 크게 뚫어 될 일이 아니다. 그만큼 건축가가 고민을 많이 했다는 증거다.

"옛날 한옥은 처마를 달아 햇볕을 조절했잖아요. 개구부(창)를 어떻게 내느냐가 굉장히 중요한데, 처마를 달지 않고도 향을 이용해서 개구부들이 전통적인 처마 구실을 할 수 있도록 했습니다."

서쪽엔 나무로 천장부터 땅에서 1㎝ 떨어진 곳까지 긴 목재를 띄엄띄엄 세워 벽을 장식했다. "나무벽을 만들려고 했다가 현장 상황에 따라 어쩔 수 없이 변경했다"고 한다. 그래도 훈훈한 집안 분위기를 내는 데 일등 공신이다. 창틀 또한 알루미늄이 아니라 진짜 나무를 써서 따뜻한 느낌을 더했다.

미혼 시절 고 소장이 혼자만의 스튜디오로 설계해 지은 집이라, 건물이 완공됐을 무렵 만나 결혼한 부인 이씨는 집에 대해 의견을 낼 겨를이 없었다. 임신 다섯달째인 그는 남편에 대해 "자기가 좋아하는 것에 대한 고집이 강한 사람이다. 전자제품, 탁자, 소품, 패브릭 일부를 내가 골랐을 뿐"이라며 웃었다. 소파도 건물 형태와 비슷하게 사선 모양의 등받이를 한 것으로 고 소장이 직접 디자인했다. 20평대 집안은 살림이 단출하지만 천장에는 커다란 은색 등이 오브제로 설치됐고, 바닥은 비슷한 색깔과 광택의 매트로 장식했다. 1970년대식 주택을 헐면서 나온 자개장의 문짝을 상판으로 해 부부의 책상을 만들었고, 나비장도 "주워 온 것"이라고 한다. 그러나 현대적인 집안과 묘하게 어울린다.

"안 예쁜 땅을 예쁘게 바꿔놓은 거지요. 겉으로 볼 땐 지나가는 사람들이 한번씩 다 쳐다보는 건축물이에요. 살아봐도 좁다는 느낌이 전혀 들지 않아요. 수납공간도 충분하고요."

부인 이씨의 집에 대한 애정 또한 대단하다. 나무벽 뒤에는 옷장이 있는데, 층고를 높이 한 천장까지 수납공간으로 돼 있어 아직 물건을 다 못 채웠을 정도다. 집 바깥 옥상에는 '비밀의 정원'이 있다. 간이 싱크대를 설치해 음식을 장만하고 설거지까지 마칠 수 있고, 가림막을 걷어올리면 차양이 된다. 이 아래 사람들이 모여 바비큐 파티와 식사도 한다. 이씨는 "밤에 옥상에 앉아 있으면 너무 조용하고 풀벌레 소리까지 들려 마치 별장에 온 것 같은 기분"이라고 했다.

그런데 왜 신사동일까. 고 소장은 2006년 고기웅 사무소를 연 뒤 2008년 이주은씨와 함께 건축사사무소 53427을 만들고 지금까지 8년가량 이 동네에서 일해왔다. 그동안 문화관광부 공공디자인 조성사업 평가위원, '문화로 행복한 학교 만들기' 사업 디렉터로 참여하는 등 공공디자인 분야에서도 활발하게 활동했다. 사무실 간이침대에서 잠을 잘 정도로 일에만 몰두했던 시간이다. 이번이 신사동에서만 4번째 사무실 이전. "건축주들에게 많은 조언을 해주곤 했지만, 직접 뭔가를 만들어 보여주고 싶었다"고 했다.

"서울이란 도시는 어떻게 될 것인가, 건축가는, 건축물이란 어떻게 돼야 하나 고민이 많습니다. 다양한 형태의 건축을 하고 싶고요. 지금 박사과정을 밟고 있는데 앞으로 동아시아 도시들 각각의 구실과 연계에 대한 연구까지 관심이 있습니다."

그의 꿈처럼 건물도 아직 현재진행형이다. 부인의 바람대로 아이가 태어나면 아래층을 터서 아이 방과 집을 넓혀나갈 생각도 있고, 지하만 차지하고 있는 사무실도 1~2층까지 올라오길 기대하고 있다. '신사 5611'의 스튜디오가 '싱글남'의 작업실에서 한 가정의 둥지가 되었듯 이 건물 또한 서울이라는 도시에 대한 다양한 제안이 영글어가는 터전이 될 준비를 하고 있는 셈이다. 이곳의 부채꼴 땅은 건축의 속설과 난제를 극복하고 '두 팔로 도시를 끌어안는 땅'이 돼가고 있다.

글 이유진 기자frog@hani.co.kr, 사진 박미향 기자mh@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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