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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금자리 건설 ‘폭탄돌리기’ 된 까닭

우리옹달샘 2012. 7. 25. 23: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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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요신문 | 박일한 | 입력 2012.07.25 13:22
이명박 정부가 핵심 주택정책으로 추진해 온 보금자리주택이 애물단지 취급을 받고 있다. 주변시세에 비해 저렴하긴 하지만 주택시장 침체가 심각하다 보니 장점이 별로 부각되지 않는다. 서울 강남권을 제외한 수도권 외곽 보금자리주택은 대거 미분양으로 남았다. 상황이 이러니 얼마 전 민간 아파트처럼 선착순 분양하는 보금자리주택도 등장했다. 고양 원흥지구, 인천 서창2지구, 의정부 민락2지구, 호매실지구 등에서다. 이 지역 보금자리주택은 계약자가 층·향을 고를 수 있다. 심지어 유주택자가 살 수 있는 것도 있다. 무주택 서민을 위한 복지정책의 일환으로 공적자금 지원을 받아 추진된 보금자리주택의 당초 취지가 크게 퇴색한 셈이다.보금자리주택의 출발은 화려했다. 2009년 10월 첫 분양 이래 청약 접수 때마나 인파가 몰렸다. 수십 대 일의 경쟁률은 기본이었다. 이는 거꾸로 민간 주택업체에게 가장 큰 장애물이었다. 서울과 가까운 수도권 개발제한구역(그린벨트)을 풀어 주변 시세의 50~85%로 보금자리주택을 공급하니 당해낼 재간이 없었다.

분양대행사 이삭디벨로퍼 이기점 팀장은 "수도권 곳곳에서 분양 대행을 하면 수요자들이 반드시 보금자리주택과 비교했다"며 "수도권에서 분양한 민간 아파트는 대부분 보금자리주택의 영향으로 고전했다"고 말했다. 보금자리주택 공급 이후 주택 수요자들의 인식은 크게 달라졌다.

비교 대상이 되는 민간 아파트의 분양가를 비싸다고 느끼기 시작했고 더 이상 서둘러 집을 살 필요를 못 느끼게 됐다. 정부는 매년 15만 가구씩 2018년까지 150만 가구의 보금자리주택을 선보이겠다고 약속하고 실제로 지난해까지 43만 7000가구(수도권 30만 1000가구)를 공급했다. 좋은 입지에 시세보다 싼 아파트가 계속 분양되고 앞으로도 쏟아지는데 굳이 지금처럼 침체된 주택시장에서 민간 아파트를 살 이유가 없는 셈이다. 최근 집을 사지 않고 전세에 거주하는 사람들이 늘어나는 것은 이런 분위기를 반영한다.

주택업계의 시름은 깊어질 수밖에 없었다. 미분양은 해소되지 않았고 집값 하락세는 이어지고 있다. 대한건설협회, 한국주택협회 등 건설·주택단체들은 죽어가는 시장을 살리려면 보금자리주택 공급을 줄여야 한다고 정부에 수차례 건의했지만 정부는 별 반응이 없었다. 그 사이 시장 환경은 달라지고 있었다. 국내외 경기 상황은 나빠지고 수도권 집값 하락세는 기약 없이 이어졌다.

보금자리주택 청약 수요도 2차 지구 사전예약 때부터 조금씩 변화가 왔다. 강남 내곡지구와 세곡2지구는 첫날 모두 마감됐지만 경기권 4개 지구는 3순위까지 1000가구 이상 미달됐다. 2011년 11월 고양 원흥지구 본청약에서는 사전예약 당첨자의 절반이 넘는 994명이 청약을 포기했다. 올 초엔 '로또'로 통한 위례신도시 보금자리주택도 사전예약자의 21%가 본청약을 하지 않았다.

사업 주체도 힘들어 하기 시작했다. 사업 시행을 맡은 한국토지주택공사(LH)의 부채는 이미 100조 원을 넘었고 보금자리주택 사업을 위한 토지보상금에 큰 부담을 느꼈다. 3차 지구인 광명시흥은 보상비만 9조 원에 달해 사업을 진행하지 못하고 있는 게 대표적이다. 하남 감북도 보상 문제로 지구계획수립이 1년 연기됐다.

그럼에도 정부는 하반기 보금자리지구 2곳 추가 지정 등 연 15만 가구 보금자리주택 공급 계획을 변함없이 밀어붙일 태세다. 최근 정부는 민간 건설업계가 보금자리주택 사업을 할 수 있도록 제도를 만들었다. 8월부터 민간이 공공택지뿐 아니라 기존 보유 택지에서 보금자리주택 사업을 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수자원공사·철도공사·철도시설공단·제주개발센터·대한주택보증·농어촌공사·공무원연금공단, 이렇게 7개 공공기관에 보금자리주택 사업을 하도록 사업시행자를 늘리면서 민간도 포함시켰다.

보금자리주택 공급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좀 더 많은 공기업과 민간을 동원하려는 게 아니냐는 분석이 잇따랐다. LH가 자금난으로 적극적으로 추진할 수 없게 되자 부담을 넘기려고 하고 있다는 의혹도 제기된다. 민간 건설사 입장에선 '어이없다'는 반응을 보인다. 주택시장 분위기를 다 망쳐놓고 이제 와서 민간이 좀 맡아달라는 뜻으로 받아들이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강남권 등 일부 지역을 제외하고 사업성을 기대하기 힘들다고 판단한다. 보금자리주택이 처음 공급될 때하고 상황이 많이 달라졌다는 것이다.

민간이 보금자리주택사업을 하기엔 규제도 많다. 민간은 정부 추진 사업과 달리 그린벨트에서 사업을 할 수 없다. 상수원보호구역, 자연보전권역의 대규모 토지 등에서도 안 된다. 사업대상지 토지를 3분의 2 이상 미리 확보해야 하고 공기업 등 공공 시행자가 자본금 50% 이상 출자하는 기준도 따라야 한다. 물론 보금자리주택인 만큼 분양가는 주변시세의 80% 수준에 묶어야 한다. 한 대형건설사 관계자는 "민간택지 조성비가 공공택지보다 높은데 주변시세의 80%를 맞추면 사업성이 있겠느냐"며 "보금자리주택 사업을 전혀 고려하지 않는다"고 했다.

새로 보금자리주택 사업을 할 수 있게 된 공기업도 비슷한 입장이다. 한 공기업 본부장은 "솔직히 왜 우리가 보금자리주택의 시행기관이 됐는지 잘 모르겠다"고 했다. 다른 공기업 담당 부장은 "주택사업과 관련이 전혀 없는 업무를 하는 회사로서 (보금자리주택사업이) 할 일은 아닌 것 같다"고 토로했다. 또 다른 공기업 부장은 "LH 부채의 상당한 비중이 보금자리주택에서 온 게 아니냐"며 "사업성이 불확실한 상황에서 억지로 들어가야 할까 걱정"이라고도 했다.

보금자리주택은 잘 알려져 있지 않지만 브랜드가 있다. 주거에 대한 새로운(New) 가치를 더한다(Plus)는 뜻의 '뉴플러스'다. 이명박 정부 출범 직후 국민복지에 대한 정부의 새 비전을 담는다는 뜻에서 그렇게 정했다. 하지만 지금 보금자리주택에서 새로운 가치를 발견하는 이는 별로 없을 듯하다. 사업성도 없고 특별히 환영도 못 받는 무리한 계획을 혈세를 동원해 무리하게 계속 밀어붙일 이유가 있는지 의문이다.

박일한 중앙일보 조인스랜드 기자 jumpcut@joo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