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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정스님, 17년간 머물던 불일암엔

우리옹달샘 2010. 3. 15. 0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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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정스님, 17년간 머물던 불일암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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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 입력 2010.03.14 19:50 | 수정 2010.03.14 21:50 | 누가 봤을까? 50대 남성, 광주

 
[한겨레] 부엌엔 밥솥 하나 그릇 몇개뿐

일구던 텃밭선 작은 봄새싹이…

법정 스님다비식이 있던 13일 아침 조계산 불일암을 찾았다. 송광사에서 가파른 오솔길을 따라 20여분 오르면 법정 스님이 1975년부터 92년까지 17년간 머문 불일암이다. 열반 이틀 전에 그의 사촌 누이인, 현장 스님의 어머니가 병문안을 와 "앞으로 스님을 뵈려면 어디로 가야 하느냐"고 물었을 때 "불일암으로 오라"고 했던 바로 그곳이다. 지금은 길상사 주지를 지냈던 법정 스님의 맏상좌 덕조 스님이 이곳을 지키고 있다.

대숲 속에 숨은 불일암은 법정 스님의 성정처럼 정갈하다. 조그만 방 두 칸 앞 마루엔 스님의 영정 사진이 놓여 있다. 그 앞에서 불자들이 3배를 하면서 무릎을 꿇은 채 하염없이 스님을 바라보고 있다. 암자의 귀퉁이엔 머리카락 하나, 먼지 하나 보이지 않을 만큼 너무나 정갈해서 보살들도 들어가기를 겁나 했다는 부엌이 있다. 장작개비 몇개, 밥솥 하나, 그릇 몇 개가 전부다. < 씨알의 소리 > 편집위원으로 함께 일하다 홀연히 남도의 산 속으로 은거한 그를 못 잊은 함석헌 선생이 언젠가 제자들과 함께 왔을 때 대접할 게 없어서 노인이 먹기 어려운 고구마밖에 삶아드리지 못한 것을 못내 아쉬워했을 만큼 평소 먹을 것도, 그 어느 것도 쌓아두는 법이 없던 단출한 살림이었다.

불일암 앞엔 그가 홀로 살며 가꾸던 50여평의 텃밭이 앞마당을 대신하고 있다. "농경사회에선 씨를 뿌리고 새싹이 돋아나는 과정을 지켜보며 살기 때문에 생명의 소중함이 사람의 마음 안에 싹튼다"면서 "흙을 멀리하고 도시화, 산업화, 정보화 사회에 살면서 인성이 메말라가다 보니 이유 없이 어린이를 폭행하고 살해하는 등 끔찍한 일이 벌어진다"고 늘 흙을 가까이하며 살라고 했던 그였다. 그가 만지던 동토의 흙에서 작은 봄 새싹이 움트고 있었다.

글·사진 조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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