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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누가 위험한 사람인가?

우리옹달샘 2009. 1. 17. 11: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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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각 단전의 역할 및 기능과 관심사등에 대하여 한번 더 살펴보고자 합니다.

 

 

 

 

 

 위 그림에서 보다시피 밑에서 부터 각성되기 시작하는 각 차크라는 맨 위 차크라가 열리면서 천지와의 합일로 귀일됩니다.

 

 수행을 자기(나)라는 아상을 지워나가 천지와의 합일을 이루는 것이라 할 때 각 차크라 별로 분비되어 인간의 욕망을 관장하는 호르몬이 위로 올라갈 수록  진리에 부합하는 호르몬이요 그에따른 욕망이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사람마다 각 각성 차크라에서 분비되는 호르몬이 달라 추구하는 욕망이 다를 수 밖에 없는데 각 단전별로 구분하면 아래와 같습니다.

       

         하단전은 육신 가족 

 

       중단전은 업신 사랑

 

       상단전은 법신 진리

 

 각성이 하단전까지인 사람들은 육신관리와 가족애 물질획득등이 생의 추구 목표요 관심사 일 것입니다.

 

 각성이 중단전인 분들은 영혼 마음 사랑 사후세계 기 등이 주요 관심사 일 것입니다.

 

 각성이 상단전인 분들은 진리나 신 또는 이들과의 합일의 문제가 주요 관심사 일 것입니다.

 

 관심사등과 생의 추구목적이 각 단전 별로 다르기 때문에 이들간에 상호 문제가 야기되기도 합니다.

 

 

 하단전이하 각성되신 분들은  번식욕과 가족애 물질등이 생의 목표가 될 것입니다. 이들에겐 영혼이라든

 

사후세계라든지 진리라든지의 이야기들은 딴나라 이야기 일것입니다.  이들에겐 진정한 사랑을 위해서

 

가족등 다른 것을 신경쓰지 않는 행위를 한다든지 진리의 추구를 위해 가족등을 신경을 쓰지 않는 행위등

 

을 보면 본인들이 이해가 되지 않는 행위이기 때문에 미친놈으로 보일 것입니다.

 

 

 또, 중단전이나 상단전이 각성되어 생활하시는 분들은 하단전의 삶을 이해는 하면서도 그에대한 호르몬이

 

대적으로 분비가 주 각성 호르몬에 비해 적어 그에 대한 욕구가 적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중단전 이상 각성된 분들에겐 육신이나 물질 가족에 대한 욕망은 별로 있지도 않을 뿐더러 있다

 

하더라도 하급욕망으로 취급되어 육신에 관한 관심이나 축재행위나 가족애등이 적어 수도한다고 가족을

 

버려두는 행위가 가능할 것입니다. 이 수준의 사람들에겐 천지가 사람을 낼 땐 그 복도 주어진다는 것을 알

 

고있기 때문이죠. 또, 영원하지 않을 그 무엇에 본인들의 생을 투영시키고 싶지 않기 때문이기도 하고요.

 

 그러므로, 이런 관점으로 사시는 분들에겐 육신이나 가족 물질등에 매달려 사는 사람들이 하질 인간으로

 

보이고  또 이런 삶을 살지못하는 사람들이 불쌍해 보이기도 할 것입니다.

 

 예를들어 부처님 같으신 분이 수행하기 위하여 사회적 용어로 처자식등 가족을 버림은 하단전의 관점으로

 

볼 땐 죽일놈 미친놈이지만 상단전 진리의 관점으로 볼 땐 당연한 것입니다. 소크라테스님도 결혼은 하셨

 

지만 가정생활은 최하점 이하의 점수를 받는 생활을 하셨을 것입니다.

 

 

 생의 추구목적이 다르기 때문에 충돌이 일어납니다.

 

 중단전이나 상단전까지 각성이 되신 분들께선 육신이나 물질 가족등이 생의 주 관심사 인 분들에게 그것

 

진리의 길과 멀다고 항상 외치고 있습니다. "부자가 천당에 가는 것은 낙타가 바늘구녁을 통과하는 것과

 

같다."등의 이야기가 여기에 해당됩니다.

 

 이들은 현재 일반적인 하단전의 욕구를 가지고 생활하시는 분들에겐 이해가 도저히 될 수 없는 이야기를

 

하기 때문에 사람들을 이상하게 현혹시킨다는 등의 죄목으로 소크라테스님처럼 죽이던지, 빛이요 진리이

 

생명이라는 예수님을 거짓 선지자라는 명목하에 민중재판 비슷한데서 죽이고 있는 것이 현실입니다.

 

 

 이런 분들에겐 본인들이 보실 때 하단전의 생을 영위하는 사람들이 안스러워 진리내지 진리와 가까운 말

 

씀들을 하시는데 하단전의 생활을 하는 사람들에겐 가정을 파괴하는 행위요. 안정을 깨는 행위요. 말도 안

 

되는 아편같은 마약으로 사람들을 혼돈으로 모는 행위로 보이기 때문입니다.

 

 

 이같은 연유로 부처님은 모든 것을 버린 무소유의 거지와 같은 수행자의 생활을 말씀하시고 소크라테스님

 

같은 경우는 젊은이들을 이상하게 선동했다느니 하는 말씀을 그 당시 민중에게 들으셨고, 예수님께서도 진

 

리적 관점에서의 "화평이 아닌 검"과 "가정의 불화"(마태복음 11장 34~39)를 말씀하고 계신 것입니다.

 

 

 소크라테스의 최후 변론처럼 무엇이 옳은 지는 신만이 아실 것입니다.

 

 

 나와 생의 추구목적이 달라도 이해의 폭이 넓어지는 계기가 됐으면 합니다.

 

 

 

 

 

 

출처 : 해인풍수
글쓴이 : 해인풍수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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