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는 지금의 부동산 경기부진 원인을 참여정부 때 급격히 늘어난 세금부담(이른바 세금폭탄)에서 찾고 있다. 세 부담을 줄여주면 부동산 거래가 활성화될 것이고, 결국 부동산 경기 나아가 전체 경기의 온도를 높여줄 수 있을 것이란 기대다.
하지만 정부의 이런 진단과 처방에 대해 위험성을 지적하는 전문가들이 많다. 과도한 세부담 완화나 거래 활성화를 위해 일부 세제를 조정할 수는 있지만, 지금처럼 재산세 종합부동산세 양도소득세 취득ㆍ등록세 등 거래세와 보유세를 총망라한 무차별적인 부동산 감세 드라이브는 이제 진정 기미를 보이고 있는 시장에 다시 불을 붙일 수도 있다는 지적이다. '세금 폭탄'을 제거하기 위한 대규모 감세 조치가 자칫 '부동산 폭탄'으로 돌변할 수 있다는 경고다.
거래 실종이 세금 탓?
서울 서초구 방배동에서 10년 넘게 살고 있는 김모(62)씨. 이사를 갈 생각이 있지만, 선뜻 마음을 굳히지 못하고 있다. 조금만 더 기다리면 양도소득세가 더 내려가지 않을지, 오래 보유할수록 종합부동산세가 낮아진다고 하는데 이사를 가는 게 오히려 손해가 아닐지 온갖 생각이 오고 간다. 김씨는 "부동산 관련 세금을 두고 하도 이랬다 저랬다 해서 쉽게 이사를 결정하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정부와 한나라당은 '버블 세븐' 지역의 부동산 거래 실종이 과도한 세금 때문이라고 믿는다. 높은 보유세(종부세, 재산세) 때문에 집을 팔고 싶어도 엄청난 거래세(양도소득세, 취득ㆍ등록세)가 무서워 팔지 못하는, 그야말로 옴짝달싹 못 하는 처지라는 것이다.
하지만 꼭 그런 것만은 아니다. 세금이 높든 낮든 시장은 그에 맞게 작동이 되도록 돼 있으며, 지금의 거래 실종은 세금 폭탄 자체보다 오히려 정책의 불확실성 때문이라는 진단이 적지 않다. 새 정부 출범 이후 "부동산 세금이 줄어든다"는 기대감이 확산되면서, 참여정부 때보다 거래가 더욱 실종되고 있는 실정이다. 고성수 건국대학교 부동산학과 교수는 "수요자는 수요자대로, 공급자는 공급자대로 향후 정부의 정책 방향이 자신들에게 유리하게 움직일 것이라는 기대감에 거래를 미루고 있다"며 "어떤 방향으로든 불확실성만 제거된다면 거래는 다시 정상화될 것"이라고 말했다.
특히 보유세와 거래세를 동시에 인하할 경우, 실제 거래 활성화로 이어질 수 있을지도 미지수다. 종부세 등 보유세가 낮아질 경우 집을 파는 것(거래)보다 계속 갖고 있는 것(보유)이 낫다는 심리가 확산돼서 부동산 매매는 더 위축되고 가격은 상승할 가능성이 높다. 이는 결국 거래세 인하 효과마저 반감시킬 수 있다는 지적이다.
지방 미분양 대책으로 풀어라
지금 부동산 경기 침체의 본질은 '세금 폭탄'이 아니라 지방 미분양 아파트 증가, 이에 따른 중소형 건설사의 경영난 악화다. 수요가 없는 지방에 주택이 과잉 공급되면서 미분양 주택이 쌓여가고, 자금을 회수하지 못한 중소 건설사들이 부도 위기에 내몰리고 있는 것이다. 전국적으로 미분양 아파트가 13만가구가 넘고, 이중 10만가구 이상이 지방에 몰려 있다. 여전히 수도권 대부분 지역은 수요가 공급을 초과하는 상태다.
전문가들은 "미분양으로 야기된 부동산 경기 실종을 감세로 돌파하겠다는 것은 잘못된 진단에 따른 잘못된 처방"이라고 지적한다. 특히 겨우 하향 안정 기미를 되찾은 수도권 부동산에는 독이 될 수 있다는 우려가 팽배하다. 지방 주택에 대한 불합리한 규제를 대폭 풀어주는 등의 미분양 대책, 그리고 구조조정을 전제로 한 중소 건설사 지원책 등이 세금 완화 보다 더 필요한 시점이라는 지적이다.
세제 측면에서는 부동산 시장을 자극하지 않으면서도 거래를 활성화할 수 있는 세심한 접근이 요구된다. 임경묵 한국개발연구원(KDI) 연구위원은 "보유세는 상당한 부작용이 우려되는 만큼 가급적 손을 대지 말아야 한다"며 "단 거래 활성화 차원에서 취득세와 등록세를 내려주는 방안은 충분히 고려해 볼 수 있다"고 말했다. 단순히 부동산을 사고 팔았다는 이유만으로 세금을 매기는 취ㆍ등록세는 조세 원칙에도 부합하지 않는다는 지적이 적지 않았다. 변창흠 세종대학교 교수 역시 "보유세 완화 시 부동산 가격을 자극할 수 있는 만큼 조세 원칙에 맞지 않는 부분만 미세 조정하는 것이 바람직해 보인다"고 말했다.
이영태 기자 yt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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