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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스템역학으로 본 잡값 거품 붕괴 전망

우리옹달샘 2008. 7. 29. 0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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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스템역학으로 본 집값 거품 붕괴 전망



        8월초 어느 날 A씨는 예년에 비해 유난히 더운 여름 날씨를 견딜 수 없어 에어컨을 사기로 결심했다. 그래서 한 전자제품 매장엘 가보니 폭염 때문에 에어컨이 다 팔려서 3주 정도 걸려야 에어컨을 살 수 있다고 했다. 하는 수 없이 A씨는 에어컨을 선주문하고 가격도 지불해놓고 왔다. 그런데 집에 돌아와서 일주일을 지내보니 도저히 견딜 수 없었다. 그래서 다른 전자제품 매장에 가 보니 역시 재고가 없는데, 점원은 10여일만 있으면 신규 물량이 나온다고 했다. A씨는 하루라도 더 일찍 무더위를 벗어날 수 있다면 어떻게든 상관없다는 심정으로 한 대 더 주문했다. 하루라도 먼저 도착하는 에어컨을 쓰고 나머지 한 대는 부모님댁에 보내드리거나 아이들 방에 따로 놓아주겠다는 생각이었다. 그런데 그로부터 일주일도 채 안 돼 더위는 한 풀 꺾이기 시작했다. 10여일 후 에어컨 두 대가 하루 간격으로 A씨 집에 나란히 도착했다. 때는 8월말이었고, 날씨는 아침 저녁으로 선선해지기 시작했다. 한낮이라도 선풍기 바람으로도 충분히 더위를 식힐 수 있을 정도였다. A씨는 다음 해 여름까지 에어컨을 틀어보지도 못하고 묵혀야 했다.


        위의 예는 물론 가상의 사례다. 우스꽝스러운가? 그럴 것이다. 독자들의 이해를 쉽게 하기 위해 좀 극단적인 예를 들었다. 독자들은 누가 그런 멍청한 짓을 하겠느냐고 말할 것이다. 그런데 어이없게도 현실에서는 이런 멍청한 짓 투성이다. 그런데 이런 멍청한 짓들이 우둔한 사람들에 의해 저질러지는 게 아니다. 대부분 제 정신을 가진 사람들이, 심지어는 매우 똑똑한 사람들이 일정한 시점에 내리는 ‘합리적’ 판단이 이런 어처구니없는 결과들을 빚어내는 경우가 많다. 여러 가지 이유가 있지만 제품 공급과정에서 일어나는 시간 지연(time delay)에 대한 충분한 고려가 없을 때도 이런 결과들이 빚어진다.


        이 같은 메카니즘을 생생히 보여주는 시뮬레이션 게임이 있다. MIT 슬로안 경영대학원에서 개설되는 ‘시스템 다이내믹스(system dynamics)' 수업은 초기에 학생들이 조를 짜서 ‘맥주 유통 게임(Beer Distribution Game)’을 해보게 한다. 공급 과정에서 일어나는 시간 지연이 생산공장과 유통업자, 도매상, 소매상, 소비자를 거치면서 연쇄적으로 어떤 파급효과를 일으키는 지를 간접 체험해보게 하는 게임이다. 게임은 이런 식이다. 학생들이 각각 소비자와 소매상 등 한 가지 역할을 맡는다. 소비자가 주문을 내면 이에 반응해 소매상--->도매상--->유통업자--->공장으로 이어지며 주문을 내게 된다. 각 단계에서 학생들은 재고를 갖게 되면 한 상자당 0.5달러, 주문 적체(마이너스 재고)가 생기면 한 상자당 1달러의 손실을 보게 된다고 가정한다. 즉, 재고를 최대한 0에 가깝게 유지해야 하는 것이다. 게임이 시작되면 소비자는 처음 몇 주 동안 4 상자를 주문하다가 이후 8상자로 올려 주문한 다음에는 게임이 끝날 때까지 그 상태를 유지한다.


        그런데, 여기에서 재미있는 것은 소매상, 도매상, 유통업자, 공장 등에서는 소비자 주문이 8상자로 오른 다음에는 주문이 들쭉날쭉 해진다. 소비자 주문은 8상자로 올라선 뒤 일관됐는데도 각 공급 단계의 반응은 불안정해지는 것이다. 또 각 단계별 재고는 +에서 -로 진폭이 생겨나고, 약 20~25주에 걸친 사이클도 생겨난다. 특히 소비자 주문 증가에 대응한 공장의 생산량 증가는 약 15주 후에 절정에 이르렀고, 생산증가량은 주문 증가량의 약 4배였다. 각 단계의 행위자들은 재고량을 최대한 0에 가깝게 만들려 하지만 실제 재고는 크게 넘치거나 모자라는 주기를 되풀이했다. (Business Dynamics, P689) 이 같은 반응은 이 게임이 수십 년 동안 전통처럼 되풀이되는 동안 한결같았다. 이 게임은 현실의 복잡한 공급 과정에 비해서는 훨씬 단순화된 시뮬레이션인데도 이 같은 진폭과 불안정성이 나타났다. 공장의 기계 고장부터 시작해서 수송 사고, 노조 파업, 양산능력의 한계나 예산 제약 같은 것들이 비일비재한 현실에서는 불안정성이 훨씬 증폭된다고 봐야 할 것이다.     

 

        이런 현상이 맥주 유통 과정에서만 발생할까? 아니다. 오히려 시장 수요의 시그널에 반응해 시장에 제품이 재빨리 공급되는(즉, 시간 지연이 적은) 공산품은 덜한 편이다. 공급 과정에서 시간 지연이 많이 생기는 주택시장은 이런 진폭 현상이 훨씬 심하고 진폭의 주기도 길다. 주택 시장의 시간 지연으로 인한 집값의 등락 사이클은 세계 각국에서 오랫동안 관찰돼온 일반화된 현상이다. ‘시스템 다이내믹스’ 수업의 기본 교재로 사용되는 존 D 스털먼 교수의 명저 ‘비즈니스 다이내믹스’에도 부동산 시장의 버블과 거품 붕괴 현상을 아예 케이스 스터디 사례로 제시하고 있다. 스털먼 교수는 “부동산 시장은 가장 불안정한 주기성을 띤 자산 시장 가운데 하나로 약 10~20년에 걸친 증폭 주기를 가진다”고 적어 놓고 있다. 부동산 시장에서 그 같은 주기가 어떻게 발생하는지 그의 설명을 인용해보자. (시스템 다이내믹스에 나오는 용어는 충분한 설명 없이는 오해를 부를 수 있으므로 일부 표현은 필자가 일반적 용어로 대체하거나 생략했다)


        “상업 용지 수요는 경제 활동에 좌우된다. 해당 지역 고용이 많으면 많을수록 더 많은 공간이 필요하고 공실률은 떨어진다. 공실률이 낮을 때 임대료는 오르기 시작한다. 임대료 상상은 기업들이 직원 일인당 공간을 줄여 적응함으로써 약간의 수요 감소로 이어진다. 하지만 수요 반응의 탄력도는 낮고 반응 시간은 길다. 공급 측면에서는 상승하는 임대료는 기존 자산들의 수익성과 시장 가치를 높인다. 가격이 높고 상승 중일 때 임대료와 운영 수익은 높고 디벨로퍼들도 상당한 자본 이득을 실현할 수 있다. 높은 수익은 새 디벨로퍼들을 끌어들이고, 그 붐에 편승해서 돈을 벌려는 금융적 지원도 부족함이 없다. 많은 새로운 개발 프로젝트들이 시작되고, 이는 개발 중인 건물들의 공급을 부풀린다. 오랜 지연 끝에(2~5년) 임대 공간은 늘어나고 공실률은 떨어지며 임대료도 시장 가치를 끌어내리면서 떨어지기 시작한다. 이익이 떨어지면 개발 비율도 떨어진다. 시장은 가격을 통해 수요 공급의 균형을 잡으려는 음의 순환고리를 만든다.

 

        새로운 개발 사업의 수익성을 평가할 때 디벨로퍼들과 투자자들은 수요와 공급의 성장을 전망함으로써 장래 공실률을 예측해야 한다. (중략) 그렇게 했다면 새 개발 프로젝트 착수율은 임대료가 정점에 이르기 훨씬 전에 떨어졌을 것이다. 디벨로퍼들은 지금 공실률이 낮고 수익이 높다 해도 수급 균형을 이룰 프로젝트가 진행중이라는 것을 깨달았어야 한다. 하지만 임대료의 정점이나 그 이후에야 건물 공급은 정점에 이른다. 다시 말해 부동산시장에 공급이 과잉되고 공실률이 높아지며 임대료가 떨어진 다음에 말이다. 디벨로퍼들은 지금 당장 수익이 높다고 본다면 새로운 개발 프로젝트를 계속 진행한다. 프로젝트를 끝내는데 2~5년이 걸리는데도 말이다. 이 공급과정을 계산에 넣지 못하기 때문에 붐일 때는 건물 과다 공급으로 이어지고 거품이 꺼진 뒤에는 건설 투자가 재빨리 살아나지 않는다. 그런데 이런 상황은 지난 100년 이상동안 전혀 개선되지 않았다.”

        

        이어 스털먼 교수는 이 같은 상황에 대한 업계의 의사 결정자들에 대한 MIT 학생들의 면담 조사 결과를 소개한다. 그가 요약한 내용 가운데 하나는 이렇다.

        “(업계의 의사 결정자들 가운데) 많은 이들이 건설 물량에 상관없이 임대료와 주택 가격이 일정한 속도로 오를 것이라고 예측했다. 그들은 공실률과 임대료, 수익률, 건설 물량, 임대 공간 공급 물량들 사이의 반복작용(feedback)을 인식하지 못했다.” “과잉 공급이 부인할 수 없이 명확해졌을 때도 디벨로퍼들은 종종 자신들보다 못한 다른 프로젝트들이 피해를 볼 것이라고 생각하고 대응을 늦춘다.” 

        지금 한국의 건설업계 종사자들도 거의 마찬가지 상황일 것이다. 또한 건설업계의 요구에 따라 집값이 오르는 지난 몇 년 동안 줄기차게 주택 공급만을 강조해온 정부 당국자들의 인식도 비슷한 수준일 것이다. 스털먼 교수는 이런 말도 덧붙인다.

        “전체 시장에 공급이 넘쳐날 때, 심지어 가장 좋은 위치의 가장 좋은 개발사업도 피해를 본다.” 왠지 분양 물량 당첨자의 40%가 계약을 포기한 반포 자이의 사례가 떠오르지 않는가?


        이쯤에서 최근 국내 부동산시장의 상황을 위 내용에 대입해보자. 외환위기 이후 몇 년 동안의 집값 상승은 수급 불균형 측면에서도 합리화될 수 있었다. 외환위기 이전부터  건설 경기 침체로 주택 잠재수요량은 지속적으로 늘어난데 반해 실제 공급량은 크게 줄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후 2001년 부동산 투기 붐이 일면서 아파트 신규 공급이 급증해 공급 부족이 빠르게 해소됐다. 실제로 김광수경제연구소의 지난해 연구결과에 따르면 2000년 약 41만호에 이르렀던 수도권의 아파트 잠재적 공급량 부족은 2006년에는 7만3000호까지 빠르게 줄어든 것으로 분석됐다. 이 연구소는 다주택보유 가구 및 수도권 비거주자의 투기적 가수요를 빼면 수도권의 아파트 잠재적 공급 부족은 거의 해소됐다고 주장했다. 전국적으로 보더라도 최근 몇 년동안 매년 50만~60만호로 사상 최고 수준의 공급이 지속되고 있기 때문이다. 지방의 주택 시장이 2006년 이후 극심한 침체를 겪고 있는 것도 이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공급 과잉은 미분양 물량 급증과 잇따르는 분양 미달, 입주율 저조 등을 통해서도 확인되고 있다. 한국건설산업연구원에 따르면 지난 4월 미분양 주택 수는 전국적으로 12만 9859호에 이르렀지만 실제 미분양 물량은 두 배 가량인 25만가구에 이른다는 것은 업계의 공공연한 비밀이다. 특히 올들어 수도권에서 분양한 5만352가구 중 미분양 물량은 19.5%인 9819가구나 됐다. 최근 서울 마포구 합정 균촉지구의 주상복합으로 시선을 모은 ‘서교자이’가 1순위 분양에서 대규모 미달 사태를 빚은 것이나 은평뉴타운의 입주율이 약 4분의 1에 불과한 것도 같은 현실을 반영하고 있는 셈이다. 

 

        위에서 언급했던 책 내용을 생각해보면 집값 버블 붕괴가 임박했음을 보여주는 징표들이 아닐까? 물론 집값 부양의지를 강하게 드러내고 있는 이명박 정부가 하기에 따라 거품 붕괴는 지연될 수도 있다. 하지만 그것은 시간 문제일 뿐 집값 거품 붕괴는 필연에 가깝다. 더구나 집값 거품이 한 번 붕괴하기 시작하면, 그 하락 폭은 상당히 클 가능성이 높다. 맥주 유통 게임의 결과에서 실제 수급의 불균형에 비해 시장 전체의 반응은 매우 크게 증폭된다는 사실을 알았다. 집값도 예외가 아니다. 초기 수급 불균형으로 촉발됐던 집값 상승이 부동산 시장 내의 요인들뿐만 아니라 각종 사회, 문화적 변수들까지 합쳐져 크게 부풀려진다. 하지만 집값이 내릴 때도 같은 현상이 일어난다. 실제 공급이 초과된 정도를 훨씬 넘어서 집값이 격렬하게 반응한다는 것이다.

 

        오해를 피하기 위해 한 가지를 덧붙이고자 한다. 공급과정의 시간 지연으로 인한 수급 불균형만이 집값의 거품 형성과 붕괴 사이클을 만드는 요인은 아니다. 달러 유동성 급증과 저금리 기조에 편승한 은행의 마구잡이 담보대출과 앞뒤 안 가리고 엉터리 부동산 대책을 쏟아낸 정부 정책의 난맥상, 건설업체와 관료들의 유착, 건설업체들의 분양가 담합 및 투기 붐에 편승한 고분양가 조작, 부동산 광고를 매개로 한 언론의 왜곡 보도, 부녀회 등의 집값 담합과 일반 가계 및 기업들의 투기 붐 편승 등이 모두 집값 거품 형성에 기여했다. 하지만 이 같은 거품이 이제 꺼질 수밖에 없는 국내외적 환경이 조성되고 있다. (*이에 대해서는 필자가 ‘집값 대세하락을 전망하는 5가지 이유’라는 제목으로 다음 블로거뉴스에 띄운 글(http://bloggernews.media.daum.net/news/1476151)을 참고하기 바란다.)

 

        필자가 여기에서 강조하고 싶은 것은 주택 수급이라는 측면에서도 이제 집값이 빠질 수밖에 없는 상황으로 가고 있다는 점이다. 그런데도 정부는 이 같은 메카니즘을 이해하지 못하고 계속 ‘공급 부족론’을 들고 나오며 10개의 2기 신도시 개발 계획을 발표한 상태다. 서울시가 이명박 전임시장 시절 지정했던 35개 뉴타운의 주택 공급 물량도 2009년 이후 본격적으로 쏟아지기 시작한다. 지금도 공급 초과 상황에서 집값이 하락할 수밖에 없는데, 정부 계획이 실현되기 시작하는 2010년대 집값은 어떻게 될까? 그때가 되면 정부나 서울시도 부동산 시장 위축 상황을 보며 계획을 수정할까? 물론 그럴 가능성도 있다. 하지만, 꼭 그러리라고 장담하기도 어렵다.

 

        왜냐하면 정부가 그동안 유사한 방식으로 숱한 엉터리 정책들을 저질러왔기 때문이다. 저출산 고령화 추세로 돌아섰는데도 70년대식 가족계획 정책을 불과 몇 년전까지 지속해왔던 정부가 아닌가? 쌀이 남아도는 게 뻔히 보이는 시점에도 대규모 새만금 간척지를 개발했다가 그 용도를 어떻게 활용해야 할 지 몰라 쩔쩔매는 정부가 아닌가? 더구나 외환위기 충격을 완화한다는 명목으로 분양가 자율화와 전매 제한 해제, 세금 인하 등 각종주택 및 부동산 규제 완화 정책들을 집값 폭등이 계속된 이후까지 지속한 것도 마찬가지 사례라고 할 수 있다. 언제쯤이면 정부는 이런 엉터리 짓을 멈출 수 있을까?   



이 글은 김광수경제연구소포럼( http://cafe.daum.net/kseriforum)의 '부동산문제'란에도 떠있습니다. 더 깊이 있는 토론을 원하시는 분은 포럼에 들러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