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종(1857-1859)
장 프랑수아 밀레(1814~1875) Jean-Francois MILLET
캔버스에 유채,55.5x66cm
오르세미술관 소장.
"만종"작품이 만들어진 1860년대 당시 물감을 살돈 조차 없는 가난한 화가 밀레를
안타깝게 여긴 화가상인 "아르투르 스테반스"가 그림을 인수하는 조건으로
1000프랑을 지원한다. 이 1000프랑에 탄생한 그림이 바로 "만종"이다.
저녁노을이질 무렵 어둑어둑해진 그림 배경속에 부부는 농사일의 고단함을 뒤로 한채
하나님께 감사기도를 올리고 있다.캐다 만 감자가 바닥에 흩어져 있고,
멀리 보이는 교회당이 정지된 아름다움의 극치를 보여주고 있다.
이 평화롭게만 보이는 그림엔 슬픈 이야기가 숨어있다.
농부 부부가 바구니를 밭밑에 놓고 기도하고 있는데 사람들은 그 바구니가
씨감자를 담은 바구니로 알고있다.
그런데 사실은 그 바구니에는 씨감자가 아니라
그들의 사랑하는 아기의 시체가 들어있다.
그시대 배고픔을 참고 씨감자를 심으며 겨울을 지내면서 봄이 오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하지만 그들의 아기는 배고픔을 참지 못해 죽은것이다.ㅠㅠ
이 그림을 보게된 밀레의 친구가 큰 충격과 우려를 보이며 아기를 넣지 말자고 부탁했다.
그래서 밀레는 고심끝에 아기 대신 감자를 넣어 그려 출품했다.
그 이후 이사실이 알려지지 않은채
세상엔 그져 농촌의 평화로움을 담고 있는 그림으로 유명해졌다.
그리고 밀레의 만종은 루브르 미술관에 보관된다.
진실은 묻힌 채 세월은 흐른다.
어느날 천재 미치광이 화가로 불리던 "살바도르 달리"가
어릴적 부모님을 따라 루브르미술관에 가게된다.
그곳에서 밀레의<만종>를 처음 보고 비명을 질렀다고 한다.
그 까닭은 땅속에 아이의 시체가 있는 관이 있다고 하였단다.
어린 말썽꾸러기의 아이의 말을 당시에는 아무도 믿지 않았다.
그후 세계적으로 유명한 화가가 된 달리의 주장이 하두 완강해
루브르박물관에서 진실여부를 위해 x선을 투사해 봤는데
진짜 아기의 관으로 보이는 상자가 있었다고 한다.
하지만 밀레의 <만종>을 보며
눈에 보이는 그대로 농촌부부의 평화로운 모습이로 해석하든,
뒤에 감춰진 아픔까지도 드러내어 감상하든
그것은 작품을 보고 느끼는 사람 각자의 몫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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