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혼을 울리는 향기 -영상시모음-

냉장고의 음식을 버리다 - 주경 스님 글 -

우리옹달샘 2008. 2. 12. 14: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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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말과 법회가 있을 때 산사에 머물고 주중에는 서울에서 일을 맡아 오가기 시작한지 1년이 지났다.

산사에 살기를 좋아하고 바라는데도 무슨 이유인지 지난 10년 가까운 시간동안 산과 도시를 오가기를

반복하고 있다. 원효스님은 " 사람이 누군들 산에 들어가 수도하기를 원하지 않겠는가만 그렇게

못하는 것은 애착과 욕심에 얽힌 까닭이니라" 라고 말씀하셨다.

그런데, 이 몸은 다행히 산사에 출가하는 행운이 있었지만, 올곧게 수행에 매진할 수 있는 복은

아직 부족한 모양이다. 대중의 소임도 수행의 한 방편이라고 위로하는 스님들이 계시지만

흔쾌한 생각이 들지 않는다.

몇 달 전 숙소로 사용하던 서울사찰의 부속건물을 재건축하게 되었다.

그래서 부득이 근처의 오피스텔에 숙소를 마련하게 되었다. 이전에는 비록 도심의 현대식 건물이었지만,

사찰에서 관리하였기 때문에 지내기에 거의 불편이 없었다.

특히 풀을 해서 입는 전통승복의 세탁과 다림질 등 손질과 식생활은 사찰의 지원이 있어 무척 안정적이었다

다른 무엇보다 절에서 지낸다고 하는 마음의 편안함이 있었다. 바로 옆방과 위아래 층에 함께 소임보는

스님들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든든하였다.

때로 함께 차를 마시며 담소도 나누고, 각자 냉장고를 털어 함께 음식을 나누어 먹는 활기도 있었다.

오피스텔에서의 생활은 왠지 알 수 없는 쓸쓸함과 삭막함이 바닥에 깔려있는 느낌이다.

문을 열면 바로 복도로 통하고, 세상 사람들의 갖가지 삶의 소리와 더불어 생활해야 한다.

아무리 도심의 생활이 그렇다고 해도 전혀 적응이 되지 않는다.

차를 함께 마시거나 과일을 나누어 먹을 도반도 없다.이런 생활은 몇달을 저 지내도

적응이 될 것 같지가 않다.

며칠 전 오랫만에 냉장고를 열어 보았다.

과일들이 말라서 시들어 있었고 상해서 먹지 못하게 된 것도 있었다.

서울생활 중에 혹여 끼니를  놓칠까 염려하여 신도들이 챙겨준 몇가지 밑반찬도 사정은 마찬가지였다.

마음이 갑갑해졌다.그래서 도로 냉장고 문을 닫아버렸다.

평소 생수를 넣고 꺼내는 일 외에 냉장고를 거의 사용하지 않다보니 이렇게 음식들이 상하는

경우가 있다.가끔 누룽지를 끓여먹는 것 외에 거의 음식을 하지 않고 , 또 혼자서는 뭘 잘 챙겨먹는

성격이 아니라서 아까운 음식을 버리게 된 것이다.

전에는 음식을 이렇게 버린 일이 없었다. 언제나 주변 사람들과 나누어 먹거나 나누어 주거나 했었다.

다시 냉장고를 열어 음식을 차근히 챙겼다. 조금이라도 먹을 수 있는 것은 따로 챙겼다.

차라리 냉장고라는 물건이 없었다면 이렇게 음식을 버리지 않았을 텐데, 무엇보다 음식을 챙겨준

사람들의 정성을 제대로 수용하지 못한 것 같아 가슴이 아팠다.

냉장고를 깨끗이 청소하고 정리했다. 그리고 남은 음식으로 한 끼 식사를 준비했다.

밥상을 앞에 두고 간절한 마음으로 기도를 드렸다. '귀하게 마련해주신 음식들에 감사들입니다 .

이 음식들이 헛되지 않도록 노력을 다하겠습니다. 또한 다시는 이렇게 귀한 음식을 버리지 않도록

하겠습니다. 그리고 버려진 음식에 대한 공덕도 반드시 기억하겠습니다.'

교차로 /아/름/다/운 /사/회 /-  냉장고의 음식을 버리다 - 주경 스님-